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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홍해의 윌슨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무감각했던 적막이 소름끼치게 무서워지는 순간, 그 존재를 자각하고 말았다.
세운 무릎을 가느다란 두 팔로 끌어 안은 채 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소중한 그 누군가가 선물했던 그 인형은 거실 바닥을 나뒹굴었고, 소녀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굳이 곤두세울 필요도 없이 공기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손가락 사이에, 볼에 닿는 느낌에,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모두가 축축했고 불쾌했다. 소녀는 한참을 그러고 있기를, 문득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녀는 칙칙한 잿빛 하늘 위에서 단조롭게 울리는 하늘의 눈물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울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만 같은
하늘이 고마워졌다. 번쩍이는 섬광과 더불어 우르릉하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포효하고 있다. 누가? 소녀는 작게 실소 했다. 울분을 터뜨리듯 포효하는 하늘을 흐릿하게 바라보던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지독한 고독감에 안기듯, 그렇게 조용히 소녀는 눈을 감았다.
-꼬마야.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감은 눈에서 보여지는 것은 어쩐지 붉다. 소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파도 소리를 듣자마자 푸른 하늘과 돌벽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 알갱이들을 연상했지만 의외로 보이는 것은 붉은 하늘이였다. 붉은 하늘, 붉은 파도. 붉은 돌에 부서지는 붉은 알갱이. 소녀는 동공이 풀린 눈초리로 모든 것이 붉게만 보이는 곳을 바라보다 곧 시선을 돌렸다. 잔잔하게 흐르는 적빛 물결을 타고 낡은 배구공이 떠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제대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다잡았다. 소녀가 있던 곳은 붉은 바위 위였다. 소녀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배구공을 바라보았다. 낡긴 했어도 유일하게 붉지 않은 것이다.
“…니가 나한테 말을 건거야?”
-이 곳은 홍해(紅海)야. 너와 나 같은 방랑자들이 주로 흘러 들어오는 곳이지.
“홍해라면…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있는 그 바다를 말하는 거야?”
-아니. 그 바다와 이 바다는 달라.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소녀는 잠시 배구공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의 말대로 이 곳은 소녀가 알고 있던 그 홍해와는 다른 곳이였다.
“그럼 방랑자라는 건?”
-말 그대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들을 말한 거지.
“떠돌이…….”
소녀는 침묵했다. 마치 이 홍해의 심연 깊숙한 곳에 가라앉고 있던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이름은 윌슨이야. 꼬마 아가씨는?
“…윌슨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지만 멋진 이름이야. 내 이름은…….”
소녀는 배구공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했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소녀의 고운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내 이름은…….’ 소녀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윌슨이라 밝힌 배구공은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타고 소녀의 주위를 한번 맴돌았다.
-이 곳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방랑자들이 꼭 한번 거쳐지나가는 곳이야.
“…….”
-너는 이름을 잃어버렸구나.
하지만 그 걸 꼭 기억해낼 필요는 없어. 그렇게 말하며 윌슨은 바로 소녀의 앞에 멈춰섰다. 어째서인지 평범한 세계에서 보던 것과는 너무 다른 공의 모습에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소녀가 웃자 윌슨도 웃었다. 그 것은 단순히 소녀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존재의 이유, 존재를 필요로 해주는 장소…. 꼬마 아가씨는 그 걸 찾아 떠돌아 다니는 거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이름을 찾는 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와 그 장소를 찾는 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소녀는 윌슨의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짭짤한 소금기가 베여 있기도 하고, 축축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소녀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떴다. 붉은 노을은 소녀가 처음 왔을 때보다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붉은 빛은 죽지 않았다.
“이 곳은 참 아름다워.”
-홍해를 지나쳐간 방랑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말했어.
“윌슨은 무엇을 찾기 위해 방랑하는 거야?”
소녀는 철저하게 자신을 방관자로 두었던 모습을 풀고 윌슨의 세계에 발을 딛기로 마음 먹었다. 윌슨은 다시 흐르는 물결을 타고 또르르
굴렀다. 첨벙거리는 물결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소녀가 디디고 있는 돌부리에 부딪쳤다. 윌슨은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난 찾기 위해 이 곳에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방랑하는 것도 아니지.
“그러면…?”
-이 홍해가 바로 내 존재의 이유야.
하지만 이 곳에 있는 윌슨은 이질적이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시 소녀는 윌슨의 세계에서
멀어져 방관자의 자세를 취했다.
-꼬마 아가씨는 상처가 많구나.
“……상처?”
-하지만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나아갈 수 없어. 그리고 볼 수 없지.
“…무엇을?”
-그걸 알아내는 게 바로 꼬마 아가씨의 몫이야.
윌슨은 다시 소녀의 주위를 천천히 둥글게 돌기 시작했다. 소녀는 얌전히 눈을 감고서 윌슨이 하는 말을 들었다.
-꼬마 아가씨. 상처는 그대로 두면 곯아 썩어버리지만, 치료한다면 가벼운 흉터로 그칠 수 있어.
“응,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난 흉터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걸.”
-마찬가지로 그걸 알아내는 것도 바로 꼬마 아가씨의 몫이기도 하지.
“결국 윌슨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거구나.”
소녀는 이제 거의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소녀는 물장구를 치고 있는 윌슨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붉기만한 하늘이다. 하지만….
“빗소리가 들려, 윌슨.”
-하지만 이 곳은 비가 오지 않아.
“내가 이 곳에 오기전까지, 내가 있던 곳에는 비가 왔어.”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니?
잿빛 하늘이 울어주던 곳. 혼자라는 적막감과 다가오는 무기력함에 소녀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이 있어야하는 장소조차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아직 해결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돌아가야했다. 소녀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돌아가고 싶진 않아. 하지만 돌아가야만 해.”
-…….
“돌아가서 찾을 거야. 내가 스스로 있을 곳을 만들거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가끔 이 곳을 찾아 주면 좋겠어, 당돌한 꼬마 아가씨.
“그 말은 나보고 다시 방황하라는 거야?”
소녀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붉은 하늘, 붉은 바다, 붉은 돌, 그리고 유일하게 제 색을 잃지 않았던 낡았지만 하얀 윌슨.
-꼬마 아가씨는 또 이 곳을 찾게 될거야.
알고 있어. 그러니까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면……….
소녀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시야를 마지막으로 또 다른 시작을 울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
이런 좋은 집필 프로그램을 찾게된 기쁨의 승화를 에세이 같은 소설로 끄적여보았지만,
어째서인지 글의 분위기는 센티멘탈. 멜랑꼴리.
ps. 잘 부탁 드려요, 여러분!
ps.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힘듭니다. 아 누가 좀 도와주세요 흑흑
물론 캐스트 어웨이에서의 윌슨은 대사가 없었지만, 이 글속에서 윌슨은 무려 말을 합니다!
물론 입이 어딨느냐는 질문에선 노코멘트지만요(..)ㅋ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읽은 단편 중 가장 은은하군요.
헉 감사합니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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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구공은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인가요.. 그렇지만 느낌은 확실히 다르군요.. (무엇보다 윌슨은 대사가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