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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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모두를 지치게 하는 고된 일이다. 전쟁을 직접 치르는 병사 뿐 아니라, 그 병사를 기다리는 가족들, 전쟁통에 특별세를 부과해야 하는 힘 없는 농민들부터 어지러운 치안에 마음놓지 못하는 상인들까지.
 심지어는 그 전쟁을 일으킨 장교, 귀족, 왕들까지도 모두 지치게 만드는 것.
 그것은 계속된 승리로 승승장구하는 알렉세이오스의 군대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어떤 때보다 오래 지속되는 원정에 온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알렉세이오스는 곧 전쟁이 끝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펼쳐놓은 지도의 동쪽 끝, 동방의 동쪽이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있었기에.
 그는 동방의 거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었지만 단 하나, 절대로 친숙해 질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지독한 더위와 습기였다. 저 멀리 보이는 연무장에서 훈련받는 병사들, 옥시덴트 땅에서부터 데리고 와서 그와 함께 자고, 그와 함께 먹고, 그와 함께 싸우던 군대들이 보였다. 이 습하고 더운 무더위 속에서도, 밀림의 기이하게 생긴, 듣도 보도 못한 나무들 사이에서도 황동의 무거운 중갑, 혹은 아마포로 된 중갑을 걸치고 창을 놀리는 저 병사들이 보였다.
 곧, 마지막 전투를 치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알렉세이오스는 갑자기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 했다.
 아버지의 급사로 얼떨결에 물려받은 왕국에, 반항하는 헬레니스 인들과의 전쟁부터 파사르타이의 60만 대군을 그의 반에도 못미치는 13만의 군대로 물리친 일과, 파사르타이 왕의 수급을 파사르타이 장교들의 손에서 넘겨받은 일. 사막의 건조함 속에서도 넘쳐나는 물을 주체못하는 위대한 대 도시, 니므롯과 그 곳 여왕과의 결혼. 그리고 바로 코앞까지 찾아 온 마지막 전투까지. 맞아, 대신전의 매듭도 있었지.
 알렉세이오스는 모든 기억을 조용히 되새겨보며 자신의 갑옷이 걸린 대리석 흉상 앞으로 다가갔다. 목과 팔이 없는 남자의 세밀한 흉근이 조각된 그 석상의 황동 갑옷에서 밝은 갈색의 그의 곱슬한 머리와 잘생긴 외모가 비쳤다.
 헬레니스 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길 뻔 했던 그를 영웅으로, 언제나 승리만을 하는 대왕으로 만들어 준 갑옷. 그것에는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어."
 알렉세이오스의 미성이 마치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건네듯이 밀림 속, 화려한 동방의 궁전에 울렸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알렉세이오스 외에는 아무도 없는 휑 한 집무실 안에서 갑자기 대답이 들려온 것이었다.
 -곧, 마지막 실을 찾을 수 있다는 거겠지?
 알렉세이오스는 마치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그 남자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래. 네 말대로라면 말이야. 그……."
 -헤롯이다. 그 반칙자의 이름을 말하는 거라면 말이지.
 "그래, 그 늙은이 말야."
 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천천히 황동 갑옷을 자신의 몸에 둘렀다. 자신의 몸에 딱 들어맞는 그 갑옷의 실을 묶는 그에게 목소리가 당부했다.
 -조심해라.
 "뭘? 그 늙은자식? 200살도 넘었다며?"
 -그는 반칙자다. 추방당한 자. 원래 나와 같은 불멸자였다.
 "킥, 불멸자?"
 알렉세이오스는 목소리를 향해 비웃었다. "그 불멸을 얻기위해 나에게 힘을 줬던 것 아냐?"
 목소리는 잠시 침묵했다. 알렉세이오스는 그가 표정은 없어도 아마 이마를 찌푸렸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 역시 침묵하고서 조용히 황동의 갑옷 위에 망토를 걸쳤다.
 "휘유~ 언제봐도 물건은 물건이야."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가 먼저 말을 텄다. 그의 말대로, 그의 갑옷은 그 엄청난 성능에 비할 심미성까지 갖추었다. 그것을 입은 알렉세이오스의 모습은 분명한 영웅만의 그것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알렉세이오스의 갑옷."
 그가 중얼거렸다. 그 갑옷은 원래 주인이 없던 것이었다. 그의 고향, 마드기스에서 찾아낸 먼지 쌓인 갑옷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갑옷을 발견하고서부터 그가 대왕이 되었고, 영웅이 되었고…….
 -두 번째 실.
 ……실이 되었다.
 알렉세이오스는 목소리의 말을 되새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갑옷 말고도 다섯 종류의 무구들이 있었다.
 "니므롯의 왕관."
 그가 가리키는 것은 사실 왕관이 아닌, 피처럼 붉은 무늬가 새겨진 황금 투구였다.
 "에티엔의 창."
 온통 검정색 일색의 삼지창이 보였다.
 "칼랍의……."
 -안장이다.
 "그래, 안장."
 그가 가리킨 것은 이제껏 대륙에서는 찾아보지 못한 기이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사실 말에 얹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기억하기로, 이 세계에서 저 물건을 사용해본 인간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건 지간트의 독니! 맞지?"
 그가 가리킨 것은 푸른색 날을 가진 단도였다.
 "이건, 람벤든의 방패."
 흔한 둥근 방패가 아닌, 아래가 뾰족해 마치 연처럼 생긴 그 방패를 알렉세이오스는 '카이트실드'라고 즐겨 불렀다.
 -그래, 다 맞다.
 "마지막 것은 뭐라고 했지?"
 -바벨의 문헌.
 "문헌? 글자말이야?"
 그는 질문을 하고서 아차 싶었다. 그 질문은 전에도 그가 그 목소리를 향해 했던 질문과 완벽히 똑같았다.
 -신의 문헌이지. 불사를 주는 힘이야.
 "헤에……, 그것만은 어딘지 모르게 추상적인걸."
 그는 이제껏 말했던 모든 무구들을 카이트실드를 팔에 끼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두 장비했다. 그러고선 은을 녹여 만든 깨끗한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번쩍이는 무구들을 감상했다.
 그는 그 때까지도 자신의 다리 밑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무언가 숙덕거리기 시작할 때, 누군가 외쳤다.
 "……왕, 대왕의 목소리다!!"

 

 알렉세이오스는 화끈하게 느껴지는 고통을 애써 참고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헤롯인가? 그래도 찾고 있었는데, 매너가 넘치시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주시다니……."
 그는 단검을 든 로브의 늙은이를 보며 말했다. 헤롯. 알렉세이오스는 그가 바로 바라 마지 않던 헤롯이란 늙은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오른팔을 왼팔로 감싸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헤롯이라는 자는 천천히 바닥에 떨어진 삼지창을 손으로 주웠다. 알렉세이오스는 그 순간 '아차'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에티엔의 창……."
 헤롯의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소음처럼 들렸다. 알렉세이오스는 그 창을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저 헤롯이란 늙은이부터 헤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때였다.
 '쿵. 쿵. 쿵.' 아주 희미하게, 알렉세이오스의 귓가로 군홧발로 궁전의 대리석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알렉세이오스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이봐, 창이 다가 아니라고? 여기 니므롯의 왕관도 있고, 갑옷도 있네?"
 알렉세이오스는 갑옷 얘기를 하면서 표정을 찌푸렸다. 그는 차마 그 갑옷이 '알렉세이오스의 갑옷'이라고 얘기하진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왼손은 빨랐다. 어느 새 구멍난 그의 팔뚝에 조잡하지만 빨간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자 여기 단검도 있네? 날이 빠짝 서 있다고. 어때, 날카롭지?"
 그는 헤롯의 주의를 끌기 위해 자신의 품에 있는 무구들을 보여주며 헤롯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검은색 로브의 후드에 가려진 그의 표정을 알 길은 없었다. 그는 뽑아든 단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며 생각했다. '그나마 왼 팔은 성하군.'
 "이걸 가지러 온 게 아니야? 아니라면……, 주러왔군. 그렇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오른팔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붉은 천 안쪽에서부터 그 천보다도 더 붉은 피가 삐죽 흘러나오며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줄이 끊어진 것이었다.
 알렉세이오스는 진땀을 식히며 왼팔의 카이트실드를 빼 내려고 애썼다. 그 늙은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팔에서 그것을 빼기란 힘들었지만, 결국 그의 그런 급한 마음이 통했는지, 간신히 방패의 가죽끈이 풀렸다.
 -텅! 텅, 터덩…….
 무거운 방패를 내동댕이 치자, 왼팔에 든 단검이 한결 가볍게 움직이는 듯 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발로 차서 헤롯에게 굴려보낸 후에 말했다.
 "뭘 주러왔을까……. 내가 맞춰볼까? 뭘 주러왔는지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땅에 떨어진 방패를 보는 헤롯의 머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옆걸음질 치며 단검을 가슴까지 올렸다.
 "그래, 알겠다. 뭘 주러왔는지 알겠다고. 바로……."
 지척까지 왔군. 알렉세이오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군홧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온다. 그리고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앞으로 나갔다.
 "……네 목을 주러 왔군!"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알렉세이오스는 필히 그의 머리가 허공을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너무나도 쉽게 단검을 피해내고 알렉세이오스가 쓴 투구의 머릿장식을 잡고 그를 오던 방향 그대로 던져버리는 자세는 가히 전사의 그것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웃기는군."
 다시 들려오는 쇠긁는 소리. 그 휘하의 친위대인 헤타이로이들이 팔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문밖으로, 거실로 날아가 저 아름다운 석조 장식을 망가뜨릴 뻔 했을 것이다. '저게 얼마나 비싼건데…….' 알렉세이오스는 불편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단검을 주워 방어태세를 취했다. '아차!' 알렉세이오스는 그 와중에 벗겨져 날아가버린 자신의 투구를 잡고 있는 헤롯을 보았다. 헤롯은 천천히 다가오며 그것을 옆으로 슬쩍 던져 놓았다.
 "위험한 자다. 모두 같이 덤벼라."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 헤타이로이들이 빠르게 헤롯의 주위를 감쌌다. 기병용의 작은 창이, 그 끝의 날카로운 촉이 헤롯의 주위를 에워쌌다.
 "어때? 후회되지 않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살려줄 수도 있으니까 어서 그 무거운 무릎을 쉬도록 하는 게 어떨까?"
 그런 그의 빈정거리는 말투에도 헤롯은 천천히 땅에 떨어진 카이트 실드를 손으로 쥐었다. 알렉세이오스는 조용히 기회를 노렸다.
 그의 허리가 점점 숙여졌다. 곧, 방패가 그의 손에 쥐어진 그 순간에, 알렉세이오스가 소리쳤다.
 "모두, 공격해!"
 원형으로 둘러싸던 창들이 단 하나 흐트러짐 없이 일제히 헤롯을 죄어왔다. 피할 곳은 없었다. 완벽한 공격이었다고 생각했다.
 -터더더덩-!!!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알렉세이오스는 헤롯의 유연한 동작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손에 쥔 방패로 창을 쳐 올리고 헤타이로이 하나의 가슴팍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당황한 헤타이로이가 창과 방패를 든 손을 들 때에,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다.
 -퉁-!
 "아아아아악!"
 크게 비명을 지르는 헤타이로이의 갑옷이 움푹 패였다. 그것도 안으로 말이다. 그 후에야 정신을 차린 헤타이로이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다가가며 창을 휘둘러 댔지만, 군인들 특유의 절제되고 집단적인 행동으로 보이진 않았다.
 헤롯은 우선 가장 가까이 파고드는 헤타이로이의 창대를 두 손으로 붙잡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당황하는 헤타이로이가 창을 놓쳤지만, 헤롯은 점점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까지 다다랐다.
 "으으……"
 헤타이로이의 신음이 뚝 끊어졌다. 알렉세이오스조차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병사만이 알았다.
 붉은 눈.
 그처럼 섬뜩한 눈동자를 본 적이 없었다. 병사는 갑자기 숨이 멎은 듯 가만히 침묵하다가 이내 다시 창을 잡고 겨누었다.
 ……동료를 향해.
 -푸욱!
 섬뜩한 소리가, 잔혹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그 때부터 알렉세이오스는 마치 한 편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았다. 서로 죽이고 죽는 난잡한 상황 속에서 헤롯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챙!
 알렉세이오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창촉을 짧은 단검으로 손쉽게 옆으로 쳐낸 후에 헤타이로이의 복부를 발로 찼다.
 "……대체 얘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냐."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그가 진정 분노했음을 알려주었다. 이제껏 들려오던 빈정거리는 말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알렉세이오스가 걸음을 옮겼다.
 알렉세이오스는 이제껏 거슬리던 고통을 잊은 듯 차분하게 헤롯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에게 찬물을 끼얹 듯, 목소리가 말했다.
 -……이봐, 바보같은 짓 마. 일단 피해야 해.
 "닥쳐."
 알렉세이오스는 가볍게 대꾸하고서 다시 날아오는 헤타이로이를 받아 옆으로 던졌다. 던져진 헤타이로이는 탁자 모서리에 부딪치고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렉세이오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싶은 순간에, 그의 날카로운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소음을 냈다. '후우우우웅'거리며 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헤롯의 후드자락을 건드려 그의 머리에서 후드를 벗겨냈지만 안타깝게도 그 뿐이었다.
 헤롯의 편 손바닥이 그의 턱을 노리고 올려졌다. 그는 그것을 보며 피하려고 가볍게 뒷걸음질 쳤다. 놀라운 힘이긴 하지만 알렉세이오스에게 그의 움직임은 느리다곤 못해도, 빠르진 않았다.
 그렇다 생각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고 그의 신형이 올려졌다. 본의 아니게 방 천장을 보게된 알렉세이오스는 놀란 표정으로 왼팔로 입가의 침이며 피를 닦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신의 힘이다.
 목소리가 대답했다. 신의 힘? 알렉세이오스는 의문을 품을 시간이 없었다. 그의 신형이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다지 빠르지 않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쿵!
 알렉세이오스의 갑옷이 아니었다면 아까 전, 처음으로 헤롯에게 당한 헤타이로이 처럼 복부가 찌그러져 죽었으리라. 그는 갑옷의 기분나쁜 진동을 느끼며 단검으로 맞대응했다. 물론 피할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 동작은 헤롯과 그 사이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았다.
 이제야 확실이 알았다. 알렉세이오스는 헤롯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가 시간을 멈췄어."
 아주 짧은 순간 뿐이었지만, 까딱했다간 그 사이에 그의 목이 분리되어 버릴 것이었다.
 -결국 알아낸 건가?
 목소리가 들리고, 대답하기도 전에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뭔가 뜨거움을 느꼈다싶은 순간 불꽃이 피어 올랐다. 바로, 헤롯의 손에서.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불꽃이 그의 망토를 스쳤다. 망토 끝이 살짝 그을리면서 불이 옮겨 붙었다. 알렉세이오스는 망토를 연결한 훅을 단검으로 쳤다.
 -퉁!
 망토가 풀리자, 알렉세이오스는 그 망토를 차서 헤롯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가질 수 있었던 틈 사이에 한 껏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곧, '지이익'하고 망토가 갈라지며 헤롯의 손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헤롯의 다른 쪽 손이 갑자기 확대되었다.
 -후우우우웅!!!
 바람가르는 소리가 아슬아슬하게 피한 알렉세이오스의 콧잔등에서 들렸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가슴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퍽.
 알렉세이오스는 너무나 쉽게 그의 가슴팍에 꽂히는 단검이 허탈했다. 하지만 곧 바로 그 허탈함이 가셨다.
 "……킥."
 웃음소리? 알렉세이오스가 고개를 돌려 헤롯의 붉은 눈을 쳐다보았을 때, 갑자기 눈이 어두워지며 기억이 끊어졌다.

 

 방금 전, 왕의 목소리를 확인했던 장교, 예메롯은 달려가던 도중,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번쩍이는 갑옷의 무언가를 보았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새도 없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고, 아슬아슬하게도 그는 그것을 안전히 잡아낼 수 있었다. 엄청난 무게를 달리던 방향 그대로 잡고 밀어 푸른 수풀위에 떨군 그는 당장에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왕, 알렉세이오스라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가 떨어진 창문을 보았다.
 붉은 눈.
 섬뜩했다. 그의 몸이 떨리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싶은 순간 그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예메롯이 정신을 차리고 왕을 부축해 일으켰다. 알렉세이오스는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
 나팔소리. 예메롯이 갑작스레 들려온 그 나팔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고개를 돌릴 때, 온 사방에서 남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흐흐흐흐흐……."

 그 눈만큼이나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온 사방에서 까무잡잡한 남자들이 차갑고 섬뜩한 무기들을 들고 달려왔다. 경무장의 그들이 일제히 투창을 던질 때에야, 그들이 기습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곧, 온 사방에서 비슷한 소음이 들려왔다.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잔혹한 그 관경은 아무리 생각해도 학살로 밖에 비춰지질 않았다.
 "크큭!"
 알렉세이오스의 입가에 뒤틀린 웃음이 튀어나왔다. 당했다. 알렉세이오스의 뇌리가 마비되는 듯 했다.
 "이제 무패의 기록은 끝났어. 그렇지 않나, 예메롯?"
 예메롯은 늘 듣던 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힘이 없어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알렉세이오스라는 사람이 언제나 힘있는 말투를 가졌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끝.
 예메롯의 이성이 돌아왔다. 시간이 멈췄었던 듯이, 갑작스레 고함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고, 비명소리가 더 사납게 들려오며, 살점을 뜯어내는 칼날과 투창들의 소리가 더 잔혹하게 들려왔다.
 그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에 자신의 대왕을 업고서 달려나갔다. 마구간, 마구간으로…….

 -쿠르르르르릉!!!

 때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낮과는 다르게 땅거미가 지면서부터 흐려지던 하늘이 어느새 달과 별을 가렸다. 천둥소리가 매섭게 들린다.
 업혀가던 알렉세이오스의 힘없는 손에서 단검이 떨어졌다. 물을 머금은 진흙에 떨어진 검에 흙탕물이 튀고, 군화가 그 위를 밟았다. 그리고 그 위에 시체가 떨어지고, 피묻은 투창이 떨어졌다. 다시 해가 떠오를 때까지, 단검 위에 열심히 빗물이 흘렀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

.

.

매주 일요일에만 업데이트 될……거에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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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99]칼리엘 2012.01.29 23:32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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